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편에 실린 6살 어린 아이 옥가이의 다리 절단 사건에 대한 사건 기록으로 오늘의 유머 - 사일런트힐님께서 소개하신 내용을 가져왔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기에 블로그 환기 차원에서 여러분들께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 6살 아이 다리 절단 사건 <1부>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87499
조선시대 6살 아이 다리 절단 사건 <2부>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87502
조선시대 6살 아이 다리 절단 사건 <3부>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87508


대장금에서 항상 맛있다고만 하던 그 중종이 맞다.



<본 이야기는 100%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로 각색없이 구성하였습니다.>


중종 28년 2월 16일. 한성부에서 급한 전갈이 올라옵니다.
그 내용은 끔찍하기 그지 없었는데,
5~6살 가량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가 용산강 무녀의 집 뒤에서에서
다리가 잘려진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죽지 않았고 하는 말이

'나를 업고 가면 내 발을 자른 집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에 한성부에선 아이를 추문하면 이미 때는 늦어버리고 용의자가 도망갈 것이니
아이와 함께 빠르게 그곳으로 가 용의자를 체포해야한다 고합니다.

이제 중종은 놀라며, 아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신중히 간호하여 죽지 않게 하고
빨리 포도 부장을 불러 체포하게 하라고 명합니다.


다음 날 한성부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음력 2월 아직 밖에선 칼바람이 부는 날 용산강 근처 감사 김귀성의 집앞에서
5~6세되는 여자아이가 두 발이 잘린 채 버려졌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물으니 개춘이라 했고, 발이 잘린 연유를 물으니 다리를 자른 사람이 '칼로 자르며 죽어라 죽어라' 하였다는 겁니다.

이를 김귀성이 발견하여 부에 고했고 부가 한성부에 고하고 한성부는 그 일을 임금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노비 한덕을 추문한 결과,

한덕이 정월 초에 그의 상전 집을 왕래하다가, 허리 아래로 동상이 걸리고 부종이 있는 어린 아이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식이 없기에 집에 데리고 와 밤을 지냈는데
주인이 더러운 아이를 데려왔다고 꾸짖어서 길에 도로 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난 주변 이웃 중에 누군가 그 아이를 데려갔다가
그 집에서 또 다시 이 아이를 버렸고, 이렇게 버려진 아이를 또 김 별좌의 종 연수라는 사람이 데리고 갔으며,
결국 누구에게도 발을 자른 이유는 듣지 못했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사건의 전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또 다른 노비였던 중덕이라는 생모라는 걸 자처한 자가 오더니
'이 아이는 옥가이다. 지난해 9월 29일에 잃어버렸는데, 이달 17일 발이 잘린 아이를 업고 가더라는 말을 듣고
그 중덕 부부가 쫓아 가보니 정말 옥가이였다.' 했다는 겁니다.


몇몇 노비들이 그 아이를 데려와 보살펴주려 했지만, 동상이 걸렸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입니다.
그리곤 발이 잘린 끔찍한 일까지 당했으니 사건을 접한 중종도 마음이 정말 편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하교합니다.

'이 아이의 두 발을 자른 것은 비록 죽이지 않았어도 마음은 죽인 것과 다름이 없다.'
형조에게 추문하게 해야 하지만, 형조에서 일이 많아 자세히 처리하지 못할듯하니,
의금부에게 추문하게 하라. 지금 잡아온 자는 금부에 가두고, 이 아이는 생모라고 자청한 자에게 보내도록 허락하라.'
하고 명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깁니다.
정원이 이야기하기를, 발을 잘린 아이를 생모에게 보내라고 했으나,
사실 그 아이는 한덕이 거두어 길렀고, 중덕은 생모라 자칭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두 집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데도 그 아이의 소재를 생모가 전혀 알지 못했고,
지금 어떻게 중덕이 생모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러자 중종도 나름 일리가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하고는,
여자아이를 생모에게 보내라고 한 것은 발이 잘렸어도 어미에게 보내 성심으로 간호하면
살릴 수 있다 생각해서였는데, 어미가 어미인지 알지 알지 못하니 한덕과 중덕을 일단 모두 가두고
아이는 아이를 보호했던 집. 즉 한덕의 주인이었던 김귀성의 집으로 보내 간호하여 죽지 않게 하라 명합니다.


자.. 여기에서 이제 문제가 생깁니다.
유일한 증언자이나 피해자인 아이는 이제 고작 6살이고 당연히 그 아이의 증언의 신뢰도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금부에서 다음 전교가 올라옵니다.
아이가 처음엔 미욱하고 언어가 착란되어 그 증언을 믿기 어려웠는데, 자세히 증언을 들어보니
그 두서가 있고 선후를 잃지 않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에 아이를 다시 본부에 데리고 와서 자세히 묻게 하는 게 어떠냐고 고합니다.

이에 중종은 여자아이가 용의자로 지목한 한덕이 범인이 맞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여자아이가 무슨 사사로운 감정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겠는가. 정말 한덕이 자른 것이기에
그렇게 증언한 것이다'라고 6살짜리 아이의 증언을 신뢰하지요.
지금 날도 춥고 아이를 옮겨다니다 바람을 쐬어 상처가 심해지거나 죽을 수 있는 폐단이 생길 수 있으니
무리해 데리고 오지 않게 합니다.

또 이어서 보해주는 집에다
'신중히 간호하고 의식이 모자라지 않게 할 것이며 죽게 하지 말라.
(아이가)불행이 죽으면 너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전하며 아이를 지키려는 뜻을 확고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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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처리함이 쉽지가 않은게,
아이를 본 사람도, 데려간 사람도 많지만 말이 다 조금씩 다르고
신뢰할만한 증언은 오직 6살 여자아이 옥가이의 것 뿐이라는 겁니다.

생모라 자칭하는 중덕은 아이를 '지난해 9월에 잃어버렸다' 했습니다.
그런데 한덕은 '이달 초 10일(1월 10일)께 얻었다가, 주인의 꾸지름으로 다음날에 버렸다.' 하였습니다.
그 사이의 기간이 5개월이나 됩니다.

중종은 먼저 생모가 버린 기간과 한덕이 데려갔던 5개월의 공백에
가장 먼저 의구심이 생겨 아이에게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보라 전교합니다.
또한, 이 사건의 포인트는 언제 발이 잘렸는가..로 생각하고,
아이를 데려갔던 사람이 한 명이 아니니
데려갔을 때 만약 발이 잘렸다면 발이 잘린 걸 모를리가 없을테니 그 시점을 아는 게 사건의 핵심이라 판단하지요.

그렇기에 한덕이 아이를 버리고 뒤이어 데려갔던 귀덕을 추문하게 합니다.
'만약 아이의 발이 잘려있었다면 이 아이를 어디에 쓰려고 데리고 갔는가.'
그리고 귀덕을 아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사람이 네 발을 자른 게 아니냐. 이 사람이 정말 너를 데리고 갔었느냐.'
라고 묻게 명합니다.


자.. 이제 지의금부사 유보와 동의금부사 심언경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그 내용을 대충 정리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재구성해보겠습니다.

한덕을 데리고 아이에게 가서 '누가 네 발을 잘랐는가.' 하니
아이는 '한덕이다' 하였습니다.
한덕과 중덕을 앉혀놓고 다시 '어느 사람이 네 발을 잘랐는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한덕을 가리켰습니다.

무엇으로 잘랐는가. 하고 물으니 '칼이다.' 하였고
어디에서 잘랐는가. 하니 '방안에서 잘랐다. 하며,
언제 잘랐는가 물으니 '낮에 잘랐다. 두 손을 묶고 솜으로 입을 막았다.'
하였습니다.

아이의 증언으로 봤을 땐 한덕이 한 짓이 틀림없어서,
한덕을 추문할 준비를 다 마치고 임금에게 추문할 승인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덕의 진술에 의하면
'지난 정월 초 10일(1월 10일) 길에 버려진 아이를 보고
주인집으로 데리고 왔더니 주인은 꾸짖었으므로 곧 버렸다.
그런데 대궐에서 쫓겨나 이웃에 사는 수은이란 사람이 데리고 갔고,
그 뒤에는 손금이 데리고 갔다.' 하였습니다.

문제는 수은의 진술서에서 노비 영대가 여자아이를 업고 왔는데,
두 발이 동상에 걸렸고 형체도 더러워 곧 버리라고 하였고,
손금의 진술서에서는 '지난 정월에 여자 아이가 두 발이 동상에 걸려
검게 부어오른 채 울고 있으므로 주인집에 데리고 왔다.
그러나 주인이 꾸짖으므로 곧 버렸는데, 그 뒤 무녀 귀덕이 데리고 갔다.'
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이 증언에 따르면 한덕이 버리고 수은과 손금이 데리고 갔다가 다시 버렸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동상이 심하게 걸리긴 했지만 아이에게 분명 두 발이 있었던 겁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에 아이를 데려갔던 귀덕의 증언입니다.
무녀(巫女) 귀덕의 진술서에 의하면
'정월 27일(1월 27일) 어린아이가 두 발이 동상에 걸려 있으므로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이달 초5일(2월 5일)에 발 하나가 동상으로 빠졌고 초 8일(2월 8일)에는 또 다른 발이 동상에 빠졌다.
자질금과 을비 등이 이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동상에 의해 발이 빠진 목격자로 지목된 자질금은,
'무녀 귀덕이 정말 아이를 데리고 와 살렸는데, 그 때는 두 발이 완전하였지만,
두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다. 고 하였고
을비는, '정월 26~27(1월 26일)께 귀덕이 두 발이 동상에 걸린 아이를 살리려는 것을 보았지만,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다' 고 귀덕이 아이를 살린 건 맞는데 동상으로 발이 빠진 것 자체는 보지 못했다고
귀덕의 증언을 동의하면서도 발이 빠진 걸 보지는 못했다고 증언합니다.

지금까지 증언에 의하면, 귀덕이 처음에는 아이의 발이 빠졌을 때 자질금과 을비 등이 보았다 진술했지만
두 목격자 다 귀덕이 아이를 살린 걸 보았지만,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이렇게 단서가 서로 어긋난 것을 보아 귀덕이 강력한 용의자고 오히려 한덕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풀어줘야하는데,
문제는 아이는 분명 한덕이 잘랐다 하니 그럴 수도 없는 아주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모든 정황 증거는 귀덕이 자른 게 가장 유력해보이는데,
가장 확실한 증언자이자 피해자인 6살 아이는 한덕을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용의자 중 하나인 귀덕을 아이에게 데려가 질문합니다.
네가 이 사람을 아는가? 물으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발을 자른 자가 이 사람인가? 물으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너를 살렸는가?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고,
이 사람이 너를 데리고 갔을 때 네 발이 잘린 채였는가? 하니 '아니다' 하였습니다.

그럼 그 전에 아이를 버린 한덕이 발을 자르지 않은 게 정황상 분명합니다.
또 다른 손금, 자질금, 수은, 을비 등의 증언을 보아도 한덕은 혐의가 없는 게 맞습니다.
다만, 피해자인 여자아이가 분명 한덕이 발을 잘랐다한다는 게 문제이지요.
아이의 증언을 보아선 한덕을 추문하는 게 당연하지만, 4~5세의 미욱한 아이의 말만 믿고,
한덕을 고문하여 신문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에 의금부사는 율법에도 '80세 이후와 10세 이전 사람의 말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였고, 귀덕이 아이의 발이 잘리지 않았을 때 데리고 간 것은 명백하니,
아이의 증언이 있다 하더라도 한덕이 발을 자르지 않은 건 이로써 분별할 수 있다 합니다.

사건이 이렇게 모호하니 한덕과 귀덕 중 대체 누구를 추문해야하며,
자신들은 도저히 이 사건을 참작하여 조처하지 못하겠다고 임금에게 의견을 전합니다.

보고를 받은 중종은 사건의 핵심은 여전히 아이의 증언에 있다 판단합니다.
80세 이후와 10세 이전의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못된다 한 말은 옳지만,
다른 사람을 아이에게 보이며 '이 사람이 네 발을 잘랐는가?' 하면 모두 '아니다'하는데,
오직 한덕을 보이면 한덕이 자신의 발을 잘랐다 하니,
아이가 무슨 귀덕과 한덕에게 애증(愛憎)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합니다.
단지 그 얼굴을 보고서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니 법률이 10세 이하의 아이의 증언을
무조건 신뢰하지 말라 하더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지요.

그리곤 역시 가장 중요한 건 발이 아이의 증언처럼 칼에 의해 잘린 것인지,
귀덕의 증언처럼 동상에 의해 저절로 빠진 것인지 아는 것이기에 거기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 조사하게 명합니다.


다음날 2월 21일 중종은

'발을 자르는 것은 잔혹한 것으로 세상에 드문 일이다. 백성을 구휼하는 정사 중에서 가장 먼저할 일로
이같은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
해조에게 적절히 마련하여 음식물을 제급하게 하라.
그리고 아이의 일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에 김귀성의 집에서 잘 보호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중덕이 어미인 것이 밝혀졌으니 그 아이를 어미에게 돌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발이 동상으로 빠진 것인지,
칼로 자른 것인지를 자세히 살피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의술에 능통한 의원과 한성부 낭관에게
다시 살피고 검사하게 할 것을 금부에 이르라' 고 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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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전교를 받고 해당 조사를 한 의금부에서 아이의 발이 어떻게 잘렸는지 보고합니다.

'금부 도사 이창무 등이 의원을 데리고 가서 발이 잘린 여자아이를 살펴 보게 하였습니다.
동상으로 빠진 곳은 두 발의 안팎의 복사뼈와 골구가 완전하며 살은 썩어도 힘줄은 남아 있는 것인데,
이 아이는 끊어진 곳이 이와 다릅니다. 복사뼈 위 정강이 뼈의 부러진 곳이 날짜가 오래되어
새살이 나고 살가죽이 줄어들었으니 칼로 자른 것이 명백합니다.'


의원이 한 보고를 보면 아이의 발이 아이의 증언처럼 칼에 잘린 게 분명하다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주웠던 귀덕이 분명해졌습니다.
귀덕이 말한 아이의 발이 동상에 의해 빠졌다는 건 거짓 증언이었고,
아이의 증언이 걸리긴 하지만 5~6살짜리 어린 아이의 증언이니 신뢰성은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요.

이에 가장 강력한 용의자인 귀덕을 매질하여 증언을 이끌어내려 하지요.

하지만 중종의 마음속에선 아직도 아이가 지목한 한덕이 의심스러웠는지
한덕을 형추(고문하여 심문하는 것)해보는 것이 어떤가하며 말했나 봅니다.

그러자 2월 29일. 판의금부사 김금사가 아예 사건 자체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판단하고 보고를 올립니다.

처음에 옥가이에게 물었을 때 옥가이가 '한덕이 내 발을 잘랐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발을 자를 때의 상황까지도 매우 분명히 밝혔으므로 믿을만 한 것은 맞다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발을 잘렸다고 말한 뒤에 여러 차례 다른 집을 거쳤는데도 그 때까지 두 발이 모두 온전했고,
마침내 귀덕의 집에 와서 치료를 잘하지 못하여 정말 발목이 빠지게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말합니다.

칼에 의해 잘렸다는 의원의 증언을 신뢰하여 귀덕을 매질하여 자백을 받아내려 하긴 했지만,
유물금이라는 과거에 동상에 의해 발이 빠진 경우를 보니 그 발도 마치 칼로 잘라 끊어진듯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사람은 원래 이같이 동상으로 발이 빠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옥가이 같은 어린아이의 발이 동상을 빠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거지요.
젖먹이 어린아이의 말로 한덕을 매질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정말 그 발이 동상에 걸려 빠졌다면
귀덕이 악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닌 치료를 잘 하지 못해 발이 빠진 것 뿐이니 이 역시 어찌 죄를 물을 수 있느냐는 거지요.
지금이야 심문을 하는 거지만 결국엔 죄를 확정 짓기 위한 조서를 작성해야하는데,
대체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대해 어떤 식으로 조서를 작성할 수 있느냐 반문합니다.

다만, 역시 그래도 가장 믿을만한 건 의원이 칼에 짤린 게 맞다는 의견이긴 하니
일단 한덕은 일단 놔두고 귀덕을 계속 심문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하고 중종에게 보고합니다.


이에 중종은,

자신도 한덕을 형추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라고 일단 말합니다.
한덕의 집에서 버려진 뒤 여러 번이나 남의 집을 거치다가 발이 빠졌으니 한덕이 관계되지 않은 것을 알지만,
유물금이라는 동상으로 발이 빠진 자와 비교하여 보면 아이의 발이 동상으로 빠졌는지 잘린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인데,
그 유물금이라는 자의 발이 오래되어 제대로 분별하기 곤란한 상황이 아니냐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요.

이어 '옥가이가 한덕이 발을 잘랐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솜으로 입을 막은 상황까지도 분명히 말했으니,
이는 비록 아이라 하나 나이가 4~5세가 넘었는데 무슨 말인들 알지 못하고 무슨 일인들 알지 못하겠는가.
혹은 무슨 원한이 있어 거짓으로 이런 말을 했겠는가. 그러므로 그 아이가 다른 집에 가고 나서
한덕이 쫓아가 몰래 자른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의원은 모두 잘라서 끊어진 것이라 말하므로
정황상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귀덕 역시 추문한 것이었다. 이 일에 대해 해당 부서에서만 의논해서는 안 되니
대신들과 의논하도록 하라.' 라고 판의금부사에게 전교합니다.

이어 정원(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다른 사항을 보고하는 관아)에
'의정부의 낭관을 불러 이 옥사에 대해 의논을 모아가지고 오도록 하라.' 라고 전교합니다.


사건을 종결짓기 전에 조선 최고 행정기관이었던 의정부의 대신들에게 마지막 의견을 묻자는 거지요.
다음날 2월 30일, 6살짜리 노비 아이의 발이 잘린 사건에 대해 국가 최고 권력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영의정 정광필은,

'옥가이가 말한 것을 보면 발을 자른 것은 한덕이 한 짓이 맞는 것 같으나, 한덕의 집에서 나와
서너 집을 거치다가 끝에 귀덕의 집에 이르게 되는데 두 발이 그 때까진 있었고 단지 동상에만 걸린 상태였습니다.
귀덕이 분명하게 말하기를 자기 집에 이른 후에 두 발이 떨어졌다 하였고,
그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자도 있으니, 한덕이 잘랐다는 것도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데 단지 미욱한 아이의 말만 듣고 큰 옥사를 만드는 것은 부당한 듯합니다.
신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의심스러운 옥사는 끝까지 밝혀 내지 않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을 듯합니다.'
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좌의정 장순손은,

'신도 이 사건을 들었습니다. 신의 뜻에는 의금부의 아룀이 온당하게 여겨집니다.'
라고 말합니다.

우의정 한효원은,

'옥가이의 말로 살펴보면 입을 막고 발을 잘랐음이 지극히 분명하여 4~5세 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능히 꾸며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형추하여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매우 온당합니다.
그러나 귀덕과 돈독 등 여러 사람의 진술서를 보면, 여러 차례 집을 옮겨 다녔으므로 동상이 걸린 것도
또한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의심스러운 옥사는 끝까지 추문하더라도 실정을 알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무고하게 죽을 폐단까지 있습니다. 더구나 동상에 걸려 발이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

사건은 이로써 종결됩니다.

더이상 알아낼 증언도 증거도 없습니다.
영의정까지 나서 의논했으니 더 의논할 신료도 없습니다.
고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고문에 의한 거짓 증언일 수 있으며,
고문을 할 근거 역시 애매모호합니다.

피해자의 증언은 한덕이 범인이지만, 정황은 모두가 무죄입니다.
피해자는 어린 아이기에 거짓증언을 할리가 없다 생각되지만,
반대로 어린 아이기에 잘못된 증언을 할 가능성이 너무나 높습니다.

삼정승의 의견을 들은 중종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귀덕을 석방하는 것으로써
결국 사건을 종결 짓습니다.

한성부와 의금부, 의정부, 좌우영의정에 왕까지 참가했던 이 사건은
결국 미재 사건으로 끝나게 된 것이지요.


첨단과학수사를 하는 현대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누가 범인인지 밝힐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는 조선시대였고 사건을 조사함에있어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찝찝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가장 현명한 결론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현대 법으로 따지면 증거불충분으로인한 사건 종결 쯤 되려나요. 법에 무지해서 잘 모르겠네요 ㅋ


이 이야기를 실록을 참고하여 조사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6살짜리 노비 아이의 사건을
그 누구도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건은 김귀성이 부에 보고하고 부에서 한성부로 보고한 뒤 한성부에서 왕에게 보고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중종이야 한 아이의 가여운 개인적인 마음에 사건을 치밀하게 조사하게 했다 할 수 있지만,
부나, 한성부 어디에서라도 이 사건을 가볍게 지나쳤다면 이런 수사가 이루어졌을 수 없었겠지요.

또한 피해자와 용의자, 증언자가 모두 노비인데도 그 누구의 증언도 무시하지 않았고,
아무런 정황 증거없이 함부로 고문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성부, 의금부, 의정부까지...
6살 짜리 노비 아이의 사건에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모두가 보고를 받고 의논을 하여
왕에게 보고를 하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비 여자아이까지 한 명의 백성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구휼하는 것이 위정자가 해야할 일 중 가장 첫 번째라는 중종의 말은 감동이기까지 했네요.


재미있게 잘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에 쓰겠다고 약속하여 이렇게 부랴부랴 써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기대를 모아가며 글을 썼는데,
범인이 누군지 결국 결론나지 않아 약간 죄송한 마음도 있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아..그리고 어디에 퍼가는 건 좋은데 가능한 출처는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조선왕조실록 : http://sillok.history.go.kr

중종 73권 28년 2월 16일 (기축) 3번째기사 / 용산강 근처에 발이 잘린 아이가 버려진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17일 (경인) 1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처리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17일 (경인) 2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18일 (신묘) 1번째기사 / 정원에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18일 (신묘) 4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18일 (신묘) 6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20일 (계사) 2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20일 (계사) 5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의논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21일 (갑오) 1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21일 (갑오) 5번째기사 / 의금부가 아이의 발이 칼에 잘린 것이라 아뢰다
중종 73권 28년 2월 29일 (임인) 2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30일 (계묘) 1번째기사 /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중종 73권 28년 2월 30일 (계묘) 2번째기사 / 정원에 발이 잘린 아이의 일을 전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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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거니 2012.10.31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한 노비어린이의 사건을 임금까지 나서가지고 저렇게 중요하게 처리한다는게 상상 밖이네요..
    요즘보다 오히려 인간미가 넘치던 시절이엇던것 같습니다.

    상상 밖이네요...글 잘 읽엇습니다.
  2. BlogIcon 니드뽀폴쉐 2012.10.31 14: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왕이 엄청 힘든 직업이라는 무슨 다큐 비스무리한 걸 본적이 있는데..
    일처리 자체는 현명하게 잘 한 것 같지만, 왕의 업무량을 생각하면.. ^^;;

    드라마가 신분제를 너무 과도하게 묘사하는게 문제네요?
    노비는 맨날 무시하고, 패고, 죽이고... ㅋ
    • BlogIcon CApple 2012.10.31 14: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드라마가 너무 과장하여 막장을 탄 경향이 있죠. 실제로 노비를 함부로 대하면 법으로 다스려졌다고 하고요. 흔히 잘못된 편견 중에 하나가 주인이 여노비를 서스럼없이 탐하거나 그런 묘사가 많은데요. 실제로는 그러면 양반이고 나발이고 말 그대로 목숨 내놔야 했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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